[다무토마마틴] 1. 사악한 혀 -4-
+ 뱀파이어au
+ 다이무스x토마스 + 마틴x토마스 입니다.
+ 시리어스물입니다.
+ 캐붕 당연히 있습니다.
+ 새드엔딩 주의
+ 서브커플링 : 로라드렉, 시바스텔.
+ 유혈주의
+ 파트1. 사악한 혀. 종료
시체에 흡혈귀의 피를 감염시키는 실험은 십 수 구의 시체가 실험용으로 사용되었지만 토마스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실패했다. 교황청은 실험결과를 보고받은 뒤 손실이 크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실험을 금지했다. 토마스는 밀착감시를 받으며 새로운 실험 대상이 될 예정이었으나 마틴의 집요한 공작 끝에 토마스 스티븐슨의 신병은 온전히 마틴 챌피의 권한이 되었다.
마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토마스가 외부와 접촉할 길을 모조리 차단하는 것이었다. 계단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세뇌를 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토마스가 이름을 불러준 뒤부터 마틴은 행복을 호흡했다. 인간의 피를 잔에 담아 먹이는 작업조차 즐거웠다. 마틴은 토마스를 무릎에 눕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몇이나 되는 흡혈귀를 어떻게 지옥에 떨어뜨렸는지 속삭였고, 잉크자국이 스며든 손등에 몇 번이나 키스하기도 했으며, 예고 없이 마른 몸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오르간과 악보를 선물해 그 연주를 혼자서 즐긴 것과 토마스를 안고 잠드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토마스는 그 모든 것을 흐린 눈빛으로 받아들였다. 마틴으로 시작해 마틴으로 끝나는 일상이었다. 마틴 챌피는 토마스 스티븐슨을 사육하고 있었다.
*
가느다란 손가락이 오르간의 뚜껑을 열고 건반을 덮은 붉은 천을 곱게 접었다. 마틴이 선물해준 오르간이었다. 토마스는 건반에 흰 손가락을 얹고 몇 번 아무 의미 없이 건반을 눌렀다. 행위에서 익숙함이 묻어났다. 토마스는 뭉근하게 페달을 밟으며 오르간 건반을 눌렀다. 부드러운 음색이 번졌다. 간단한 음계가 느릿하게 연주되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흐리멍덩했지만 몸은 반사적으로 오르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붕대가 감겨있었지만 건반을 누르는 데는 아무 지장도 없었다. 토마스는 악보에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더듬더듬 노래를 연주했다. 토마스의 연주 실력은 마틴의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노래는 습격당하기 전날 까지 공들여 연습 하던 제례곡이었으나 토마스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토마스는 어느새 연주를 끝마치고 제 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마틴은 토마스를 읽었다. 그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직 인간이었던 시절, 토마스는 발이 저리고 손톱에 피가 나도록 오르간을 연습하기 일쑤였다. 마틴의 표현은 담백한 사실묘사였다. 핏물이 번진 오르간 건반과, 손가락이 손톱에 눌려 터진 상처에 붕대를 감고 건반을 닦던 모습과, 그토록 연습했는데도 성이 차지 않는다 말하며 짓던 쓴웃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토마스의 손끝은 깨끗하기만 했다. 거듭 덧나던 손가락의 상처는 흡혈귀로 변하며 흔적도 없이 아물었다. 익숙하던 통증이 사라졌으니 어색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참 손끝을 바라보고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던 토마스가 마틴을 돌아보았다. 마틴은 고개를 끄덕여 허락의 제스쳐를 취했다. 토마스는 다시금 건반에 손을 얹었다. 두 번째 곡 역시 조금 더듬고 음이 길게 늘어지던 구간이 몇 군데 있었지만 무사히 끝까지 연주가 끝났다. 두 번째 연주가 이어지는 사이 시계를 들여다본 마틴은 연주가 끝나자마자 토마스에게 계속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을 것을 주문하며 자리를 비웠다. 그를 혼자 두고 계단을 내려가는 심정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마틴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틴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뒤로 오르간 연주가 길게 따라붙었다.
오르간을 연주할 때 마다 기억들은 파도거품처럼 밀려와 토마스의 발목을 적셨다. 두서없이 떠오른 기억은 짝을 맞추려고 들수록 엉망진창으로 뒤얽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토마스는 꾸준히 떠밀려오는 기억의 파편들을 방치했다. 마틴은 무의식중에 토마스가 온전히 기억을 찾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토마스는 조각조각 떠오르는 추억들을 그저 가만히 내버려두고 마틴이 요구할 때만 떠오른 것들을 하나 둘 건져 내보일 뿐이었다.
마틴은 계속 연주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토마스는 연주하고, 또 연주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연주가 멈추었다. 토마스는 자신이 건반에서 손을 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머뭇거리며 손을 거둔 토마스는 의자에 앉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야할 것만 같았다. 문가에는 마틴이 아닌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어둠속에서도 그의 은발과 뺨의 흉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침묵이 괴괴하게 이어졌다. 남자는 토마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슬퍼보이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토마스는 다시 한 번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괜찮으세요?”
조금 잠긴 목소리가 어둠속에 스며들었다. 어둠속의 남자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다.”
그는 한걸음 한걸음 토마스에게 다가왔다. 토마스의 어깨에 손을 얹자 옷가지 너머로 이전보다 더욱 마른 뼈대가 느껴졌다.
“조금도 괜찮지 않아.”
그는 토마스의 팔 아래로 손을 넣어 마른 등을 끌어안고 붕대감긴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어느새 다이무스의 어깨에 코를 묻게 되었으면서도 토마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다이무스는 분노와 슬픔을 누르며 토마스의 손등에 감긴 붕대를 물어뜯었다. 흰 붕대가 무참하게 찢겨나가며 푸른 문신이 새겨진 손등이 드러났다. 다이무스는 손등에 새겨진 문신에 이를 박았다.
“……――!!”
언어가 되지 못한 비명이 날카롭게 울렸다. 뇌수를 지지는 것만 같은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다이무스는 모든 저항을 찍어누르고 손등을 물어뜯었다. 다이무스의 턱과 토마스의 손등이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토마스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뒤엉켰다. 당연하게 떠올랐어야 하는 수많은 의문들이 물밀 듯 쏟아져 도리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느새 고인 눈물이 턱선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토마스는 다이무스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엉망진창이던 손등은 어느새 아물어있었다. 푸르스름한 잉크 역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세뇌는 깨졌다. 다이무스는 비명처럼 울부짖는 토마스를 힘껏 끌어안았다.
“토마스. 어떻게 하고 싶나. 말해라.”
“내보내, 내보내주세요……!”
공포마저 섞인 울음소리가 한마디가 핏덩이를 토해내는 양 절절했다. 격한 호흡과 눈물이 뒤섞여 다이무스의 가슴팍을 적셨다. 토마스는 세뇌가 깨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했다. 다이무스는 방풍복을 벗어 토마스를 감싸고 품에 안았다.
그믐달 아래 그림자가 거침없이 질주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밤공기가 아주 잠깐 토마스를 깨웠다. 저 멀리 검은 여자 그림자가 보였다. 눈이 마주쳤던가. 토마스는 다시금 다이무스의 품에서 정신을 잃었다. 두 번째 기절은 좀 더 길었다.
*
검은 그림자가 열린 문 앞에 섰다. 이 문은 흡혈귀에게는 생과 사를 가르는 저승문이나 다름없었으나 오늘밤만큼은 여염집의 문보다 맥없이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성 안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채 닿지 않은 그늘에는 어둠이 빼곡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곤충조차 울지 않는 밤이었다.
*
오르간은 침묵하고 의자는 식어있다. 마틴은 이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악보대에 쌓여있던 악보들을 모조리 내팽개쳤다. 흰 악보들이 정신없이 나부끼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가 없다.
맥이 빠져 의자에 걸터앉아있던 마틴은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맺히고 있었지만 마틴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오르간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부터 마틴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토마스에게 걸어놓은 세뇌는 마틴 자신이 아니고서야 풀 수 없는 강력한 것이었다. 침입자가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누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이곳에 침입자라니. 절대적으로 믿어온 명제들이 온갖 방향으로 공격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마틴은 침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토마스가 스스로 이 곳을 나갔을 가능성은 없다. 마틴은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신뢰하며 매일 밤마다 토마스의 머릿속을 읽으며 탈출에 대한 발상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꼼꼼하게 점검하기까지 했다. 마틴은 토마스가 자력으로 탈출했을 가능성을 폐기처분 시켰다. 그렇다면 침입자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마틴은 토마스를 마뜩찮아하던 몇몇 수뇌부를 떠올렸다. 초조함에 잠겨있던 마틴은 낯선 기척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대가는 서늘한 나이프가 되어 돌아왔다.
마틴은 바닥을 굴러 나이프를 피했다. 소리도 없이 허공을 가르는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흡혈귀와 싸우며 다져진 경험 덕분이었다. 마틴은 바닥을 구르고 난 뒤에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둠속의 여자는 그림자처럼 움직여 마틴에게 다가왔다. 마틴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지만 얼마 피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쳤다. 여자는 손을 뻗어 마틴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어마어마한 악력이었다. 마틴은 본능적으로 상대가 흡혈귀임을 깨달았다. 여자는 마틴의 목덜미에 나이프의 칼날을 걸쳐놓고 섬뜩하게 웃었다.
“죽어버려.”
마틴은 그제야 상대방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살기가 어린 웃음을 담고 있는 얼굴은 마틴이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시바 포. 마틴은 멱살을 쥔 시바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가 제대로 된 저항을 하기도 전에, 칼날이 마틴의 목을 그었다. 붉고 뜨거운 핏물이 흠뻑 튀었다. 시바는 마틴을 내팽개쳤다. 단단한 바닥에 부딪친 마틴은 동공이 풀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피거품을 토했다. 두 손으로 깊게 베인 목을 눌러보지만 피는 속절없이 손가락을 적시며 흘러나왔다.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시바는 마틴의 시선에 의해 수백갈래로 찢어져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바는 살기등등한 마틴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냈다. 죽기 전까지 좀 더 괴롭혀줄까? 이렇게 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은데. 시바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나이프를 적신 피를 손끝으로 길게 문질렀다. 바로 그때, 시바의 발밑에서 수십개의 괴성이 터져나왔다. 비명같기도, 늑대의 하울링 같기도 한 수십개의 목소리 속에서도 시바는 정확하게 귀에 익은 목소리를 구별해냈다.
“메이…….”
시바는 계단을 돌아보았다. 긴 비명이 끝없이 울리고 있었다. 시바는 지체없이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채 두 걸음이 되기도 전에 그녀는 어둠속에 녹아들었다. 메이! 두 번째 외침은 그녀의 안에서 메아리쳤다.
마틴은 가물가물하게 멀어져가는 눈으로 시바의 뒤를 쫓았다. 제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끈질긴 데이워커의 생명력도 반 이상 목이 날아가는 것은 견뎌내지 못할 듯 싶었다.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마틴이 마지막까지 생각한 것은 그를 바라보며 웃던 새파란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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