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토마] 깃털감옥
+ 연령반전 피터토마
토마스 스티븐슨은 아침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지하연합에 오곤 했다. 유치원을 가는 어린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평범한 아이들이 사회성과 간단한 사고력을 기른다면 토마스는 거기에 더해 능력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토마스의 교육담당은 루이스였다. 같은 결정능력자이며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토마스의 부모에게 큰 영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가 가장 따르는 사람은 루이스가 아닌 피터 모나헌이었다.
"루이스 형아. 피터 형아는 언제 와요?"
"……열한시는 되어야 올 것 같아."
"열한시?"
토마스는 아직 시계 보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다. 루이스는 펜을 찾아와 메모지에 원을 그리고 약식으로 시계바늘을 그렸다. 굵은 시침과 가느다란 분침이 명확하게 열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가 이 모양을 하면 올거야."
토마스는 시계와 메모지를 몇 번이나 번갈아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얼마나 야무지게 다물었는지 젖살이 덜 가신 오동통한 뺨이 평소보다 동그랬다. 토마스는 루이스에게 배우던 도중에도 틈틈히 시계를 돌아보았다. 어린아이의 애정은 맹목적이다. 루이스는 토마스를 보며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우쳤다.
피터가 도착했다. 토마스는 함박웃음을 짓고 피터를 향해 달려가다가 기우뚱 균형을 잃었다. 그러나 토마스가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가시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강력한 염동력이 토마스를 부드럽게 들어올렸다.
"형아!"
피터는 대답 대신 토마스를 품에 안았다. 토마스는 재잘재잘 신이 나서 떠들었다. 루이스 형아랑 공부했어. 엘리랑 간식 먹었어. 형아도 먹을래? 장난감 놀이도 했어. 재미있었어. 형아 보고싶었어. 형아도 그랬어?
피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가 토마스에게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토마스는 시선과 몸짓으로 답을 얻어내는것으로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피터가 돌아오면 토마스는 피치못할 경우가 아닌 이상 피터의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동화책이었다. 피터는 머그컵에 약간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신 다음 토마스를 무릎에 앉혔다. 언젠가 토마스가 아이다운 실수로 커피가 가득 들어있는 머그컵을 쳐서 넘어뜨릴 뻔 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피터가 곁에 있었던 덕분에 토마스는 젖은 자국 하나 없이 무사할 수 있었지만 피터는 그 뒤로 토마스가 뜨거운것을 만지는 것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동화책 역시 피터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몇번이나 읽었던 내용이지만 피터는 지루해하는 기색도 없이 소리내어 책을 읽기 시작했고, 토마스 역시 처음 읽는 동화책처럼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동화책은 전형적인 굿나잇 스토리였다. 점차 잦아드는 피터의 목소리에 맞춰 토마스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무렵 토마스는 까무룩 잠들어있었다. 피터는 염동력 대신 두 팔로 토마스를 안고 일어났다. 어린아이의 체온은 어른보다 높다. 아이를 가슴에 안자 뜨겁고 진득한 것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피터는 문득 루이스를 돌아보았다. 루이스의 시선에는 불안감과 경계심이 어려있었다. 피터에게는 익숙한 눈빛이었기에 그는 그저 입가를 가볍게 당겨 웃었다. 마네킹의 미소가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피터는 언제나 혼자 임무를 수행했다. 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도 몇 없고 혼자여도 충분히 효율을 낼 수 있지만 무엇보다 피터는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했다. 눈앞에서 타깃이 피를 뿜으며 쓰러져도 눈썹 한 번 꿈틀하지 않는 피터에게 공포에 찬 눈빛을 던지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다. 토마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다. 그러나 엘리는 피터를 무서워했지만 토마스는 거리낌없이 피터에게 다가왔다. 적대감을 모르고 생존본능을 위협당해본 적도 없는, 사랑과 애정으로 감싸여 자라난 멋모르는 아이였으나 피터는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피를 내지 않고 사람을 해치는 방법은 많다.
이제 피터의 옷에서는 피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
어느날 루이스는 은밀하게 피터를 불러냈다. 피터는 성가시다는 기색이었지만 말없이 호출에 응했다. 아마도 토마스가 집으로 돌아간 시간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고싶은 말만 해. 시간끌지말고."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할지 고민하던 루이스는 한숨과 함께 사교적인 대화를 포기했다.
"토마스와 거리를 두는게 좋지 않겠어?"
피터는 루이스를 응시했다. 순화하고 또 순화하자면 달갑지 않은 기색이라고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스는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가 풀었다.
"토마스는 아무것도 몰라.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충격받을거야. 피터 모나헌. 토마스는 아직 어린애야."
"토마스가 어리다는건 나도 알아.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런 무책임한……!"
"어린애들은 누가 자길 싫어하고 누가 자길 좋아하는지 다 알아. 얼마나 예민한데."
피터는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런 토마스가 판단하기에, 부모 빼고 자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는거야. 그건 아마 크게 틀리진 않았을테고."
루이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피터는 루이스가 대표하는 연합을 향해 말했다.
"그 애가 먼저 시작한거야. 그렇다면 끝낼지 말지는 내 권한 아닌가?"
"피터 모나헌!"
피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먼저 그 애를 놓아줄 일은 없을것같아. 다른 사람들한테도 헛수고 하지 말고 포기하라고 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