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제노]
+ 스터디라지만 원펀맨 연성은 처음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
+ 원작이 어정쩡하게 섞인 미묘한 AU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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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이 흐드러졌다. 그는 황무지 위로 흩뿌려진 괴인의 시체를 둘러보았다. 살벌한 것이 정신건강에 그리 좋을 것 같은 풍경은 아니었다. 꽃씨나 좀 사다가 뿌려볼까. 꽃을 가꿔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나무를 심는 것 보다는 쉬울 성 싶었다. 문득 그의 시선이 계곡에 덩그러니 자리잡은 오두막에 닿았다. 가장 가까운 인가도 걸어간다면 40분은 걸릴 터다. 슬쩍 고개를 내밀었던 충동은 귀찮음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내적갈등은 그리 크지 않았다. 꽃씨에 대한 생각도 어차피 심심풀이로 떠올렸던 것이다. 문은 소음이 거의 없이 매끈하게 열렸다. 집을 지어본 것은 처음인데 제법 괜찮게 지어졌다. 새 건물 냄새가 아직 진했다. 이곳이 그의 새 거처였다.
*
블래스트. S급 1위이자 아무에게도 정체를 밝히지 않은 히어로. 그의 존재 자체에 회의를 품은 사람도 있지만 동경하는 자는 수십, 수백배는 될 것이다. 블래스트와 만난다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노스는 끈기-를 빙자한 고집-를 다해 S급 히어로들과 수뇌부들을 찔러댄 끝에 그에게 괴인이 특히나 많이 나오는 특별구역을 수호하는 일이 맡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굴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연락이 닿았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네. 다만 그에게 임무를 부탁하기 위해 수색을 재개한 와중에 그 지역의 괴인으로 인한 피해 빈도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관찰되었지. A급은 출동할때마다 90퍼센트 이상의 사상자를 내는 지역이었고, 그 지역에 들른 다른 S급 히어로도 없었어.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지. 그 곳에 블래스트가 있다는 것.”
“그렇다면 그 이후에도 그곳에 가 본 사람이 없는건가?”
“그럴 리가 있겠나. 제노스 군. 협회는 몇 번이나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아무런 특이점도 발견하질 못했네. 그가 의도적으로 협회를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야. 뭐, 협회측에서는 그에게 줄 사례금을 따로 모아두고 있는 것 같긴 하더군. 명색이 히어로 협회인데 공짜로 입을 닦을 수는 없다는거겠지.”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이었지만 제노스는 적당히 팽의 답변을 받아들였다. 제노스가 전투중심으로 짜여있던 신체의 파츠들을 좀 더 가볍고 날렵한 이동용 파츠로 잠시 교체한 것은 그날 밤이었다.
산등성이를 넘자 작은 마을이 보였다. 시골에서나 볼 법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따스한 불빛을 품고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전원의 고요함이었다. 잠시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던 제노스는 괴인의 습격을 허락하고 말았다.
“큭……!!”
근육덩어리같은 생김새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의 펀치였다. 아름드리나무를 반쯤 부러뜨리다시피 한 제노스는 균형을 회복하며 기습으로 망가진 파츠를 체크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흘러갔다. 초경량 파츠는 빠른 이동에 유용하지만 견고함은 떨어진다. 비록 방심했다고 하지만 S급 히어로를 기습 한 번으로 손상을 줄 수 있는 괴인이라니, 제노스는 찰나간 그나마 멀쩡했던 오른팔의 수리를 끝내고 괴인을 향해 광자포를 겨눴다.
“어이. 괜찮냐?”
“?!”
제노스의 뒤편에서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벗겨졌을 뿐 평범한 인간이었다. 괴인을 보지 못한건가?
“당장 피해!”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은 차림의 남자는 제노스의 외침에도 눈썹을 찡그릴 뿐 다가오기까지 했다. 괴인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괴인의 근육 위로 힘줄과 핏줄이 불뚝 솟기 시작했다. 좋지 못했던 상황이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제길! 제노스는 끝을 염두에 두고 오른팔에 에너지를 모았다. 오른뺨에 생긴 균열에마저 빛무리가 스며들 정도의 힘이 집중되었다. 그 순간, 남자가 제노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봐!”
그리고
괴인이 터져나갔다.
남자의 주먹은 평범했다. 간단한 발구르기와 허리부터 회전하는 깔끔한 주먹지르기는 흠잡을 데 없었지만 그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 한방에 제노스를 반파시켰던 괴인이 폭사했다.
“상태가 영 안좋아보이는데 우리 집에라도 올래?”
얼떨떨하게 남자를 바라보던 제노스는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
남자는 자신을 사이타마라고 소개했다. 그의 집은 계곡 평원 한가운데 세워져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을의 불빛이 멀기만 했다. 달빛 아래 바람이 불 때 마다 물결치는 꽃들이 보였다.
“혼자……사시는겁니까?”
“어쩌다보니. 그나저나 녹차뿐인데 괜찮아?”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대접할 거리가 변변치 않다며 서로 다른 컵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녹차를 담아왔다. 살림살이는 조촐했다. 예의상 녹차를 한모금 마시고 눈에 띄지 않게 집안 내부를 훑던 제노스에게 구급상자가 건네졌다. 구급상자에는 쌓여있던 먼지를 급하게 닦은 자국이 선명했다. 내용물 역시 갖춰놓은지 꽤 된 기색이 강했다. 하긴, 그렇게나 강하다면 이런 간단한 의약품은 필요하지 않을 터였다.
“사이보그 맞지? 이거 말고 망치나 그런걸로 줘야하나?”
“아. 수리는 걱정마십시오. 자체수리가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사이타마는 머리를 몇 번 긁더니 구급상자를 원래 자리에 갖다놓고 제노스가 스스로 몸을 치료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사이타마 선생님.”
“왜 선생님이야?”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사이타마의 표정이 단번에 떨떠름해졌다. 그러나 제노스 역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치열한 기싸움 끝에 제노스는 허락을 받아냈다고 여겼고 사이타마는 확답을 보류했다.
“그럼 내일 또 오겠습니다!”
오지마. 안와도 돼! 사이타마의 얼굴에 떠오르는 거부감을, 제노스는 모르는 척 했다. 사이타마는 제노스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이다. 문득 제노스는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선생님. 혹시 블래스트에 대해 아십니까?”
“블래스트? 사람 이름이야? 이름 특이하네.”
“아뇨. 히어로입니다. 히어로 협회 소속의…….”
“히어로 협회? 그런것도 있어?”
제노스는 설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뻐꾸기 괘종시계는 매정하게 열두번 울었다. 아무래도 여유있게 설명이나 할 시간은 아니라고 판단한 제노스는 사이타마의 숙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났다. 블래스트라 할지라도 사이타마보다 강할지 회의감이 드는 상황에서 블래스트 수색에 의욕이 생길 리가 없었다.
*
“선생님. 양배추와 두루마리 휴지 사왔습니다. 알려주신대로 세일중인 마트에서 사왔습니다.”
“토마토가 깜짝세일을 하더군요. 선생님께서 토마토를 잘 드시는 것 같아서 한 묶음 사왔습니다.”
“아, 돌아오셨군요. 바쁘신것같아서 제가 대신 청소중이었습니다. 세탁기는 탈수기가 고장난것같길래 제가 수리했습니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사이타마는 식탁에 홀로 앉아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쩌다가 겨우 한 번 구해준 것 뿐인데 선생님, 선생님 하며 졸졸 따라다니고 저렇게 온 집안일을 도맡아 하려고 드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2인분의 저녁식사가 식탁에 차려졌다. 제노스의 요리실력은 제법 좋았다. 매번 사이타마가 먹고싶어하는 메뉴들을 척척 대령해내는 솜씨는 다름아닌 레시피 업데이트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제자를 보며 사이타마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맛을 즐기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상황은 사이타마의 상식이 먹히질 않고 있지 않은가.
“선생님. 입에 맞으십니까?”
“어? 어. 응. 맛있네.”
제노스는 기쁜 기색이었지만 사이타마의 얼굴에는 걱정만 쌓여갔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면 무얼 하나. 가르쳐줄 것이 하나도 없는데! 강함의 비결을 알려달라는 제노스에게 자신의 트레이닝 비법을 알려주었지만 탐탁치 않은 반응만 얻은 것이 겨우 엊그제였다. 그러나 사이타마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제노스는 사이타마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파악했음에도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매일 찾아오는건……. 사이타마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제노스를 돌려보내려고 했고, 제노스는 설거지까지만 하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사이타마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으면서도 제노스를 배웅했다. 혼자 돌아오는 길은 제법 적막했다. 사이타마는 풀벌레들마저 숨을 죽이고 있음을 뒤늦게 눈치챘다. 아니나다를까 어둠속에 녹아있던 괴인이 사이타마의 머리를 노리고 팔을 휘둘렀다.
빼곡하게 피어난 잡초와 꽃 위로 괴인의 살점이 흐드러졌다. 미관상 별로 좋진 않지만 내버려두면 풀들이 적당히 저 위를 뒤덮을 것이다. 사이타마는 끝도 없이 나타나는 괴인들을 찾아다니며 처리한 것이 며칠이나 되었는지 헤아려보다가 그냥 오늘 하루만 조금 더 늦게 자기로 결정했다. 밤잠 없는 제자가 새벽같이 왔다가 첫만남 때처럼 봉변을 당하는 일은 사양이었다. 적당히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온 사이타마는 옷을 갈아입기 무섭게 창고에서 캔버스와 물감을 꺼내 밖으로 나왔다. 사이타마가 지나가는 말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해두었던 제노스가 사온 물건이었다. 선물이라고 준것이니 쓰지 않고 처박아놓기도 좀 그렇지. 사이타마는 무엇을 그릴지 고민했다. 문득 산봉우리 위로 펼쳐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늘 보는 풍경이었지만 그럴듯하다 싶었다. 사이타마는 붓을 적셨다. 그가 그림을 다 그릴 때 까지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