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제목은 슈뢰딩거의 토마스였음 ㅋ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뒤를 케루님이 잇지 않는다면, 토마스는 죽을 확률도 살 확률도 50퍼센트이므로...(슈뢰딩거:얌마
토마스는 안개도시 포트레너드에 그럴듯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작고 좁지만 아늑하고 포근한 집. 소유자가 거주지를 닮는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 루드빅은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집이 그를 닮아서 어설프지만 따뜻하고 제법 귀엽게 품는 맛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 뿐이었다.
토마스는 잠옷의 첫단추가 거의 풀려나가는지도 모르고 루드빅의 가슴팍에 기대 누워 졸고 있었다. 함께 누워있는 상황이어서 불편할 만도 하건만 루드빅은 단 한번도 토마스가 무겁다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분명 골격은 남자가 맞건만 -순전히 루드빅의 시점에서-비리비리하기 짝이 없다. 이렇다보니 밤놀이도 마음껏 할 수 없는 상황. 루드빅은, 그래. 욕구불만이었다. 쌓이고 쌓인 욕구불만을 몸으로 풀 수 없으니 말로라도 풀어야지. 루드빅은 삐죽 솟는 심술을 고스란히 내뱉었다.
"토마스씨?"
토마스는 힘겹게 눈을 깜빡이더니 하품을 깨물며 대답했다. 네?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겁니까?"
새파란 눈동자가 커졌다. 토마스는 불에 데인 것 처럼 화닥닥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죽어요? 왜요? 어디 아파요?"
당장 병원이라도 끌고 갈 것 처럼 허둥대는걸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 혹자는 악취미라고 할만한 생각을 천천히 즐기며, 루드빅이 대꾸했다.
"그럴리가요. 그냥 가정을 해 보는 겁니다."
토마스는 발끈하는가 싶더니 금새 풀이 죽었다.
"당연히 슬프겠죠. 엄청 울기도 하겠고……. 루드빅씨는 시끄러운거 싫어하시니까 장례식장이랑 무덤 앞에서 내내 울거예요."
마지막 문장에는 뾰족하게 가시가 돋아나 있었다. 그래봤자 루드빅을 동요하게 만들기는 무리였지만 말이다. 루드빅은 마음대로 하라며 받아넘겼다. 토마스는 그럴듯한 반격을 하기 위해 끙끙 머리를 싸맸다.
"그럼 루드빅씨는 제가 죽으면 어떻게 할거예요?"
"죽으면 죽는거지 뭐가 더 있습니까?"
토마스의 얼굴이 다시금 빨갛게 달아올랐다. 진짜 너무하는거 아니에요? 볼멘소리를 하며 한참 루드빅과 실랑이를 벌이던 토마스는 제풀이 지쳐 헐떡이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 어느새 잠옷의 첫단추가 풀려 맨송맨송한 쇄골이 드러났다. 루드빅은 토마스의 손목을 누르며 그 위에 올라탔다.
"루, 루드빅씨……?"
루드빅은 대꾸하지 않고 그저 가느다랗게 웃었다.
*
선혈이 하얗게 질린 손가락을 적시며 흘러내린다. 실개울처럼 줄줄 흘러내리던 피도 이제는 손끝에 맺혀 방울방울 떨어져내린다. 루드빅은 달렸다. 능력을 사용한다면 더욱 빠르게 도착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등에 업힌 토마스가 견뎌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루드빅 와일드가 다쳤다면 환부를 고열로 지져서라도 출혈을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루드빅은 토마스가 쇼크사할까봐 두려웠다. 단내가 올라오도록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건만 등과 허리 부근을 흠뻑 적신 피는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그가 달려온 길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잉크는 한방울 한방울이 바로 토마스 스티븐슨의 피요 생명이었다.
"루드빅……."
어떻게든 말을 걸어 의식을 유지시켜야한다. 루드빅은 중상을 입은 환자가 기절해버리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루드빅은 실낱같은 토마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대답하는 순간 저 목소리가 끊길까봐 두려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루드빅씨……."
"시끄럽습니다."
루드빅은 극도로 초조해하며 쏘아붙였다. 흥분이 지나쳐 무게감이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원체 가볍다는건 알고 있지만 지금 루드빅이 업고있는 그는 두렵도록 가벼웠다. 그가 발을 내딛는 충격에 부서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루드빅은 자신이 이성을 잃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마땅한 타개책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루드빅은 달리고, 또 달렸다.
"화내지 마세요……."
루드빅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화 내지 마세요. 토마스를 의사의 손에 맡긴 뒤, 루드빅은 그 말을 몇번이나 곱씹었다. 부디 그 말이 토마스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 되지 않길 바랬다. 지금 당장이라도 수술실에 뛰쳐들어가 실력 없는 의사들을 목과 몸통을 분리시킨 뒤 가장 실력 좋다는 놈을 밀어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비참함과 자괴감 또한 녹처럼 번져 흉곽 안쪽을 좀먹었다. 루드빅. 루드빅 와일드. 사냥꾼이고 헌터이면 무얼 하는가. 이토록 무능한 것을. 루드빅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응시했다. 검은 가죽옷 위로 마른 피 자국이 검게 뭉쳐 굳어가고 있었다. 말라빠진 몸뚱이에서 지나치게 많은 피가 흘렀다. 수많은 생명을 거두어가며 경험을 쌓아온 루드빅 와일드의 이성은 토마스 스티븐슨이 생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임을 선고했다. 루드빅은 뇌의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을 도려내고 싶었다. 희망을 포기했던 그가 다시금 희망을 찾아 헤메고 있었다. 이게 모두 토마스 스티븐슨 때문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루드빅은 토마스의 죽음을 가정하는 것 조차 싫었다. 이토록 극단적인 상황에 맞닥뜨린 후에야 루드빅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토마스는 인공호흡기를 쓰고 가느다란 링겔을 주렁주렁 연결한 몰골로 루드빅에게 돌아왔다. 루드빅은 그 곁에 앉아 말없이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억눌린 신음이 허무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