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토마] 천사히카와 악마토마스로 연성해 연성!
+ 소재 허락해주신 수플레님. 감사합니다!
+ 얼마만의 연성이짘ㅋㅋㅋㅋㅋㅋㅋ
+카톡으로 연성해서 복붙하는건 또 첨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사와 악마는 사이가 나쁘다. 중세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명제이던 이 문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는가 싶더니 이제 와서는 지나가다 얼굴이 보이면 눈짓으로 인사까지 나눌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들의 종교에 대한 관점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종교에는 천국과 지옥이 묘사되곤 한다. 미래의 행복을 당근으로 삼아 현세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지키려는것 역시 종교서적에서 천국을 그토록 아름답고 누구나 가고싶은 장소로 묘사한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천사와 악마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천국을 열망하면서도 종교서적을 기준으로 완벽하게 윤리적이지는 못한 삶을 산 인간들 때문이었다. 가장 그럴듯한 예시로는 죄를 지어 지옥에 가야 할 인간이 면죄부를 흔들며 천국에 보내달라는 억지를 쓰고 천사에게 매달리는 케이스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처벌 수위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서로 얼굴을 붉혀야 했던 처지이니 사이가 좋았을리가.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무신론자와 함께 종교서적에서 묘사하는 사후세계에 의문을 인간의 수가 크게 늘었다. 종교개혁 이후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변화는 그들의 예상보다 빨랐다. 중세로부터 몇백년도 흐르지 않았는데 지옥에 흥미를 보이는 인간이 나올 지경이니 뭇 천사들마저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웃는 판이었다.
천사와 악마들의 업무는 판결에서 수배와 검거 쪽으로 추가 기울고 있었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죽은 육신과 분리된 상태를 자각하면 비명을 지르거나 경건한 태도로 심판자를 기다리는 인간들 뿐이었는데 이제는 온갖 방향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물리적 제약이 없는 상황을 즐기려고 하는 인간들이 늘어나는 탓이었다. 한 구역을 담당한 천사와 악마가 날개가 부러지도록 영혼 수색을 하다보면 없던 동지애도 싹트는 법이다. 발견하지 못한 쪽이 먼저 발견한 쪽에게 수고했다, 혹은 고맙다는 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경우도 점점 보편화 되고 있었다. 실무가 바뀌면 행정체계 역시 그에 맞게 바뀌는 법. 이제 천사와 악마는 저승이라는 기업의 각기 다른 파트를 담당한 부서나 다름 없는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사후세계의 근대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가 무조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법. 히카르도의 손아귀에서 공문이 와그작 구겨졌다. 난데없이 악마와 팀을 짜서 같이 다니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히카르도는 개인공간을 중시하는 성격이고, 일을 할때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히카르도와 짝지를 이루게 된 악마는 여태껏 그와 같은 구역을 담당해왔던 놈이 아닌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놈이었다. 시범케이스란 시범인 동시에 실험적이기 때문에 성가시고 짜증나는 법. 히카르도는 이 일 못한다고 뒤엎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가 파괴성을 드러내지 못한 것은 순전히 낯선 악마의 얼굴에 떠오른 호기심과 호의, 그리고 기대감 때문이었다. 새파란 머리카락에 안경을 쓴 악마는 히카르도의 큼직한 날개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날개의 크기가 곧 경험과 힘의 증거이므로 히카르도는 예의를 갖춘 경탄에는 익숙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노골적인 동경은 또 처음이다. 악마의 날개는 악마가 양 팔을 옆으로 벌리면 팔꿈치를 간신히 넘길 정도로 작았다. 자격은 있겠지만 경험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함께 힘을 합쳐 이 짜증나는 협력업무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업무를 잘 가르쳐서 보내야 할 가능성이 컸다. 히카르도는 무심코 미간을 찌푸리려다가 악마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가까스로 얼굴에 힘을 풀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은 거의 대부분 천사에게도 적용된다. 다만 히카르도 바레타는 평소 그 속담을 운운하는 천사들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멱살을 잡던 천사였다.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지옥 밑바닥도 사람이 많아서 별로 안춥대요! 그리고 그렇게 큰 죄는 짓지 않으셨으니까 300년만 지나면 바로……."
"300? 지금 나랑 장난해? 300년이 뉘집 애 이름인줄 알아?!"
인간은 상대방이 만만하다 판단하면 한도끝도없이 기어오르는 습성이 있다. 히카르도는 토마스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다못해 행동을 개시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인간은 대머리에 주름이 지도록 활짝 웃었다. 히카르도의 어깻죽지에 달린 사람만한 날개 한 쌍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의 얼굴에 떠오른 근거 없는 승리감을 본 히카르도는 혀를 찼다. 인간들은 모든 천사가 인간을 천국에 보내주고 싶어한다고 생각하곤 했지만 히카르도는 굳이 입아프게 그 착각을 교정시켜준 적이 없었다. 어차피 지옥에 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텐데 무엇 하러?
히카르도는 토마스에게서 판결문을 건네받더니 가볍게 인간의 오금을 걷어차 무릎꿇렸다. 인간이 생전에 지은 죄를 모두 기록한 판결문은 제법 두툼했다. 그 두툼한 판결문이 대머리를 찰싹 때렸다.
"양심도, 없는 놈이, 천국을, 바래?"
어절마다 찰싹찰싹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토마스는 쩔쩔매며 시선을 다른데 돌리기 바빴다. 히카르도는 그런 토마스를 배려해 1절만 하기로 했다. 큼직한 손이 인간의 머리를 잡았다.
"68년간 지은 모든 죄를 인정하나?"
히카르도는 손아귀 힘으로 억지로 인간의 머리를 움직였다. 강제적이라는 것만 빼면 세로로 저어지는 고갯짓은 분명 긍정의 제스쳐였다.
"너는 지옥행이다. 판결에 불만은?"
인간은 귀가 번쩍 틔였는지 목에 힘을 주고 버티려고 했지만 히카르도의 아귀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인간의 고개가 뻣뻣하게 가로로 저어졌다.
"가서 반성해라. 다음 생에는 귀찮게 굴지말고."
"으아아아!!!"
히카르도는 그대로 인간의 등을 걷어차 구름 아래-지옥으로 떨어뜨렸다. 1층부터 6층까지의 지옥은 차례로 입을 벌려 그대로 인간을 통과시켰다. 이 인간에게 배당된 곳은 지옥 가장 밑바닥이니 그곳까지 닿아야 간신히 멈출 수 있겠지. 영혼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라도 죽지 않는다. 히카르도는 스믈스믈 입을 다무는 지옥구멍을 들여다보곤 고개를 들었다. 문득 토마스와 눈이 마주치자 팔자에도 없는 변명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 크흠. 한 인간에게 너무 오래 시간을 끄는 것도 좋지 않다. 판결을 기다리는 다른 영혼들에게 실례니까."
"으음. 그렇군요. 명심할게요."
토마스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 하면서도 히카르도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히카르도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
토마스는 종종 히카르도의 날개를 열렬하게 응시했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고 바라보는 기색이었고, 히카르도는 그 시선을 애써 모른척 하며 토마스가 마음껏 날개를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다 첫만남때의 말실수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개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천사 혹은 악마들 때문에 히카르도는 짜증이 쌓일대로 쌓인 상태였던 탓에 토마스의 시선에 울컥 화를 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토마스는 미숙할지 몰라도 예의바른 심성의 소유자였고, 그 뒤로 단 한번도 대놓고 히카르도의 날개를 구경한 적이 없었다. 그냥 한번만 더 참을걸. 지금의 히카르도는 토마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날개를 만지는 것은 물론 매달리는것도 허락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입밖에 내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 뿐이지. 이런 식으로 자존심을 부리는 것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연애전선에는 결코 좋지 못하다. 히카르도 역시 알고있지만 좀처럼 자존심을 내려놓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히카르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마스는 무심코 제 날개를 한번 파닥였다가 화들짝 놀라 시선을 거두었다. 히카르도는 오늘도 한번 더 한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