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잭의 경우에는 인격이 통째로 뜯겨져 전혀 모르는 타인의 몸에 이식당하는 사고를 겪었음에도 변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 부분을 잭의 본질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본질이라 할 수 있을까.
잭은 성실했고, 성실하며, 성실할 것이다. 생전 다니던 학교에서도 숙제 한 번 밀려본 적이 없었고 시험기간마다 벼락을 불러내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가 질투어린 시선 세례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클리브 스테플은 하루 24시간을 반 대기 상태로 지내는 기자였다.
밤샘은 일상이고 마감은 호시탐탐 클리브의 수면시간을 노린다. 잭은 나름대로 클리브를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잭의 눈에 클리브의 일상은, 모든 사항을 고려해보더라도 적잖이 비효율적으로 비쳤다. 몇 없는 의사소통 수단을 이용해 넌지시 그 점을 지적하며 삶의 성실성이 낳는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안정감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그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리브에게는 빵이 없으면 스테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말 이 비견될 만큼 현실성 없는 제안이었다는 것이 둘 사이의 비극이었다. 클리브의 어처구니는 잠시 성층권을 뚫었다. 자로 잰듯한 성실성이 모든 인류에게 가능했다면 인류는 진작 우주에 진출해 미지의 이웃과 우정을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두번째 싸움의 시작이었다.
한 가지 삶의 방식만 고집해 온 사람은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잭과 클리브는 성실함이라는 면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주제보다 극과 극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첨예하게 대립할 수도 있었던 주제였지만, 잭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클리브의 억울함과 울분과 스트레스를 받아주며 한걸음 물러났다.
어쨌든 좀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법.
잭은 클리브 대신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한 클리브를 내면세계로 이끌고 영양을 보충하고 청결을 유지하며 수면시간을 채워주는 것이 잭의 일과가 되었다.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한정적인 그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