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토마] 신부이야기 au
+ 모리 카오루 작가님의 만화 신부이야기 au입니다.
+ 사실 원고용으로 하고 있었는데 몽골에 대해 아는게 1도 없어서 스토리가 안나오더라구욬ㅋㅋㅋㅋㅋㅋ그리고 드랍....(숨기) 아무튼 그런 이유로 뭔가 여기저기가 이상할 수도 있읍니다 ㅇㅅ;ㅇ)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 위로 날아든 화살 한 대가 단번에 여우의 숨통을 끊었다. 히카르도는 활을 갈무리하며 말을 몰아 숨을 거둔 여우를 거두어 말안장에 실었다. 이미 말안장 양쪽으로 이런저런 사냥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이보다 많이 가져가면 아무리 튼튼한 말이라도 몸살이 날지도 모른다.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였다. 히카르도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 위로 올라탔다. 말은 주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을을 향해 경쾌하게 걷기 시작했다. 히카르도 바레타는 고아이다. 다행히 혈연을 중심으로 단단히 묶인 마을 안에서 히카르도는 굶주리지도, 헐벗지도 않았지만 사람이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생명체인 법. 말수 적고 욕심이 없는 히카르도에 대해 많은 어른들이 우려를 표하고 대부 역시 적잖은 걱정을 표했지만 다감多感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가지고 부모 잃은 아이를 꾸짖을 수도 없지 않은가. 어쩌면 너무 어릴 때 양친을 잃은 것이 큰 충격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히카르도가 저를 두고 걱정어린 눈빛을 던지던 어른들의 시선을 피해 얼마나 많이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어른들에게 감사한 것은 사실이나 그와 별개로 모든 것을 감사하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
아내의 언질을 되새기던 대부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담배연기에 섞어 내쉬었다. 오늘도 그의 대자는 그가 없는 틈을 타 예비신부의 가족들에게 오늘 잡은 사냥감들을 한아름은 선물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결혼 전부터 정성이 대단하다고 웃었겠지만 사정을 아는 그로서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의 대자-히카르도 바레타는 결혼을 원치 않았다.
같은 씨족의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같이 자라난 정이 있어 괜찮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마을에는 히카르도의 짝이 될 수 있는 아이가 없었다. 다행히 교류를 돈독하게 해야 할 씨족에 연배가 맞는 오메가 아이가 있었고, 히카르도의 죽은 부모를 대신해서 그가 결혼식을 진행시키자 대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마을을 비우고 사냥을 나서기 시작했다. 대자는 넌지시 불러 결혼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도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고개를 끄덕인 것이 전부였다. 히카르도 역시 짝 없는 알파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결혼을 거부하지도 않고 그럴듯한 사냥감들을 예비 신부에게 보내는 것이다. 비록 해 질 무렵이면 돌아올지라도 친구 하나 없이 혼자서 하루 종일 사냥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대자 나름의 작은 반항이었다. 잘 타이르고 싶어도 무슨 말을 들을지 벌써 눈치 챈 히카르도가 그를 피하고 있으니 방법이 없었다. 벌써부터 처가 식구들에게 극진한 아이를 대놓고 불러다가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부는 건너편 집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히카르도가 외롭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대부의 걱정과 결혼식 날짜는 나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날 당일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다. 히카르도 역시 결혼식 당일이 되고나서야 신부의-그것도 무릎까지 닿는 머리쓰개를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얌전하게 앉아있는 신부는 대부의 아이들-히카르도에게는 사촌동생뻘 되는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았다. 이 마을 사람들이 비교적 체구가 작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히카르도는 상상했던 스물 한 살의 체격보다 한참 모자란 몸피를 보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히카르도의 발은 아무렇지 않게 그를 신부의 곁으로 이끌었다. 그렇지 않아도 체격이 큰 편이던 히카르도가 곁에 앉고 보자 신부의 머리가 히카르도의 어깨에 닿을 지경이었다.
결혼식은 인파가 넘쳐나고 정신이 없기 마련이지만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일에 시달린다. 다행히 신부가 있는 신방 안에는 신랑과 신부 한쪽이라도 친밀한 사람-가령 같은 동네의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으니 한결 나았지만 그럼에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앉아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면에서 히카르도는 새신부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새신부는 손끝까지 덮는 신부복과 무릎까지 덮는 머리쓰개를 쓰고 히카르도가 도착하기 전부터 꼼짝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히카르도는 종종 신부를 곁눈짓했다. 머리쓰개가 미미하게 움직이는 것이 역시 얌전히 앉아있기만 하는 것이 많이 지루한 기색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신부에게서 작은 배울림이 들렸다. 신부가 크게 동요하는 것이 배가 많이 고픈 기색이었다. 하긴 신부의 마을은 두 세대 전쯤에 정착을 했다고 하니 히카르도처럼 사냥을 하기 위해 굶주림에 익숙해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때마침 신방 밖에서 히카르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결혼식이 끝날 때 까지 신방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신부와 달리 신랑은 틈틈이 밖으로 나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할 수는 있었다. 히카르도는 신부를 한 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 다리가 다 뻐근하게 아파왔다. 새삼 조그만 신부가 신경이 쓰였다. 히카르도는 대부에게 이끌려 이곳저곳에 인사를 하는 틈틈이 접시를 챙겨 볶음밥을 담고 몰래 가져온 손칼로 고기를 잘라 챙겼다. 천만다행히도 신랑복의 소매는 감쪽같이 접시를 숨길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히카르도는 태연한 얼굴로 신부의 곁에 앉았다. 그는 마을에서도 타고난 사냥꾼으로 유명했다. 신방에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신랑과 신부를 바라보지 않는 짧은 순간, 히카르도는 신부의 머리쓰개를 살짝 들추고 그 아래로 따뜻한 음식접시를 밀어넣었다. 그리고 신부의 옷소매를 가볍게 잡아당겨 주의를 끄는 것 까지, 히카르도는 정면을 주시하며 순식간에 모든 일을 끝마쳤다.
약간의 침묵.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는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그 목소리만큼은 또렷했다.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미세하게 그 뒤를 이었다.
결혼식은 사제의 주관 아래 마지막 의식을 치르면 하면 끝이 난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때가 바로 이 때였다. 안경알 너머로 비치는 눈동자가 새파랗다. 신부의 얼굴에 웃음이 확 퍼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 위였다. 바로 곁에서는 조용하게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필름이 끊겼다고 생각한 찰나 간밤의 추태가 생각나 사람을 수치스럽게 하듯이, 잠깐 망각의 늪에 묻혀있던 오늘 하루의 기억이 빠르게 공백을 메웠다. 반추되는 기억들 사이에서 수치스러움을 곱씹을만한 일은 없었다. 히카르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가 곁에 누운 신부가 뒤척이자 바로 숨을 멈췄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신부의 숨소리가 다시 잔잔하게 이어졌다. 히카르도는 그날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
“많이 지루하시다면 사냥을 다녀오시는건 어떠신가요?”
히카르도는 그 말 한마디에 활과 화살통을 챙겼다. 토마스는 그새 물건의 위치를 외웠는지 말재갈부터 도시락까지 한아름은 되는 준비물을 챙겨주었다. 덕분에 허술하더라도 짐을 가볍게 해 몸으로 때우는 식의 사냥을 하던 히카르도로서는 거의 몇 년 만에 완벽한 사냥 준비를 갖췄다. 대부가 보았다면 참으로 기뻐하셨을 것이다. 말안장에 앉은 히카르도는 바로 떠나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며 토마스의 곁으로 말을 몰았다.
“혹시 먹고 싶은 고기가 있나?”
히카르도의 질문에 토마스는 잠시 눈동자를 또로록 굴리며 고민하다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거 못 골라요. 히카르도씨가 잡아준 고기는 다 맛있었는걸요!”
히카르도를 위한 배려가 아닌 솔직 담백한 사실이었다. 가금류와 야생조류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토마스는 사냥으로 잡은 고기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고, 몇 번 안되는 경험의 대부분도 히카르도의 흔적이 닿아 있었다. 히카르도는 필사적으로 흘러넘치려는 마음을 갈무리했다. 다녀오겠다 한 마디를 남기고 사냥을 위해 말을 몰아가는 것이 히카르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말 한필이 초원을 달린다. 히카르도는 조류는 물론, 토끼나 여우를 모두 무시했다.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은 한정되어있으며 고기를 손질하는 것 역시 시간이 든다. 게다가 너무 늦으면 토마스는 또 식사도 하지 않고 히카르도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장 빨리, 가장 좋은 것으로. 자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초원을 훑었다. 맹금류의 시력과 사냥감을 찾는 능력은 대단한 만큼 잘 길들인 매가 한 마리 있었다면 사냥은 한결 더 수월하고 빨랐을 것이다. 히카르도는 얼마전 놓아주었던 매가 새삼 아쉬워졌다. 매사냥 도구들은 멀쩡하니 최대한 빨리 새로운 매를 길들여야 할 것 같았다.
상념 속에서도 사냥꾼으로서의 감은 날카롭게 번득였다. 저 멀리 한가로이 풀을 뜯는 사슴이 보였다. 활 한 대가 날카롭게 공기를 찢었다.
토마스는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안장 옆구리와 히카르도를 번갈아 바라보는 것이 적잖이 놀란 모양이라 히카르도는 서둘러 말안장에서 내려와 암사슴을 묶어두었던 끈을 풀었다.
“지금이면 암사슴이 제일 맛있다. 아직 어리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서 부드럽고 맛있을거다.”
그러니까. 히카르도는 허둥지둥 말을 이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다음에 할 말이 궁했다. 조그만 신부는 방금 숨을 거둔 사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사슴은 요리 해 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가르쳐주겠다.”
“정말요?”
토마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히카르도는 토마스를 대신해 사슴을 들쳐멨다.
“사슴고기는 어떤 맛이에요?”
“…….”
어떤 맛이냐니. 히카르도는 처음 사슴고기를 먹어볼 예정인 사람의 기대를 북돋울 만큼 뛰어난 말솜씨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머릿속의 빈약한 단어들을 뒤적거리며 인상을 쓰던 히카르도에게, 토마스는 질문을 바꿔서 다시 물었다.
“사슴고기도 맛있어요?”
“맛있다. 특히 구워먹으면 좋지. 식구가 많으면 삶거나 끓여서 먹지만 오늘은 구워먹어도 충분할거다.”
“흐음~.”
히카르도를 따라가던 토마스가 묘한 소리를 냈다. 새신부는 새신랑과 눈이 마주치자 예쁘게도 미소지었다.
“그러면 다음에는 끓여먹어볼까요?”
토마스는 은근슬쩍 히카르도에게 기댔다. 은근한 뉘앙스에 어렴풋이 낌새를 느낀 것이 전부였던 히카르도는 다음 순간 발화의 함의含意를 깨달았다. 귀부터 목덜미까지가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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