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견 같다고 막 주워다가 키우면 이제 법으로 처벌받는다고 합니다! 보호하는 강아지를 유기견 센터에 보낸 뒤 입양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히카르도를 유기견센터에 보내버리면 다음날 유기견센터가 사라져있을지도 모르니 소설적 허용으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ㅇㅅㅇ)> 히카르도의 늑대 형태가 실제 크기는 평범하게 서있을때 성인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초대형 사이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망상에 망상을 거듭하다보니 스토리는 다 정해졌지만 일단 다음편을 쓸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군요.....머릿속에서는 이미 완결 났는데 왜죠ㅠ
시간이 되었다. 수면을 가장하고 있던 늑대는 푹신한 쿠션과 담요 위에서 일어나 자동문 앞에 앉았다. 생각같아서는 연약한 유리문을 부수고 나가 남자가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늑대는 인간들의 감시기계가 짜증스러울 만큼 성능이 좋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익숙한 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늑대는 자동문이 열리지 않을 거리, 그러나 문과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시원한 아침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안경을 쓴 남자는 오늘도 열심히 달려온 것인지 얼굴이 상기되어있고 숨이 가빴다. 늑대는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손 아래에 머리를 밀어넣었다.
“오늘은 형이 빨리 왔지? 그래그래. 착해, 똑똑해~ 우리 멋쟁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어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은 다음 순간 늑대의 목덜미 털을 신나게 헤집었고 남자는 어느새 늑대의 앞에 무릎을 꿇고 힘껏 안았다가 늑대의 미간에 요란스럽게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늑대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애정을 묵묵히 받아냈다. 한참동안 늑대를 예뻐해주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남자는 숙직실에서 나온 수의사의 웃음섞인 질책을 받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럼요. 히카르도가 간호견 노릇을 톡톡히 해줘서 조용했죠. 스티븐슨씨도 알잖아요, 쟤가 가까이 가면 위험해질 것 같던 애들도 금방 상태가 좋아지는거.”
“와, 어제도요? 쟤 진짜 어디서 훈련받던 강아지같지 않아요? 아무리봐도 센터에서 잃어버린 애 같은데…….”
“저도 그렇긴 한데 센터마다 다 연락해봐도 허스키를 간호견으로 키우고 있다는 데는 한군데도 없었잖아요. 가정집에서 잃어버렸나 해도 공고를 보고 오는 사람도 없고…….”
“칩도 없었고 말이죠.”
“주인을 그리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발견했을 때 크게 지저분하지도 않았던데다가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미스테리가 따로 없다니까요. 어쨌든 다른 동물들이랑도 잘 지내는 것 같으니 병원에서 마스코트처럼 키워도 될 것 같아서 다행이죠.”
탈의실 문 손잡이를 잡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의사를 바라보던 토마스는 기다렸다는 듯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대신 진료비는 스티븐슨씨 월급에서 깎을거예요.”
토마스의 어깨가 축 쳐졌다.
“그래도 직원 할인으로 해줄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아요.”
토마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탈의실로 들어갔다.
늑대-히카르도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잘 들리는 대화를 듣고 내심 혀를 찼다. 동물들을 치료한다는 인간들이 늑대와 대형견도 구분하지 못하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히카르도는 자신의 외양이 일반적인 늑대와도 크게 다르다는 사실과 잘 훈련된 개들보다 몇 배는 영리한 행동에 대해서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24시 동물병원에 새로 들어온 식구의 정체는 놀랍게도 한 달 전에 습격을 받고 실종되었던 히카르도 바레타-폭력만으로 이 일대의 어둠의 주민들을 평정한 희대의 웨어울프였다.
*
토마스는 영 달갑지 않은 눈치의 히카르도를 달래고 또 달래서 간신히 하네스가 연결된 옷을 입혔다. 이것도 큰 발전이었다. 히카르도의 상처가 거의 나았을 무렵부터 산책을 시키기 위해 사비를 털어 구매한 빨간 가죽 목줄은 히카르도의 목에 둘러지기도 전에 순식간에 센티미터 단위로 찢겨나갔다. 토마스는 a4용지처럼 찢어지는 목줄을 보고 대형견의 턱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저 고집과 저 힘으로 사람을 물려고 달려들지 않는 것이 대단할 지경이었다. 목줄에 대한 거부감인가 싶어 준비했던 하네스 역시 30초 뒤 명줄을 달리했다. 그러나 대형견을 실내에 가둬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토마스는 큰맘 먹고 강아지 옷과 연결된 형식의 목줄을 구입했다. 옷 역시 찢어지기 쉬운 면이 아닌 인조가죽 재질에 등에 연결된 목줄용 고리가 튼튼하게 버틸 수 있도록 강아지의 몸을 두 바퀴 휘감는 타입이었다. 그 광경을 본 누구도 히카르도가 그나마 스타일을 구기지 않을만한 물건이라는 생각에 옷을 허락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토마스가 선보인 물건이 토끼나 소형견들이 많이 입는 노란 가방에 날개까지 달린 디자인이었다면 물건들은 비닐봉지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향해야 했을 것이다.
히카르도는 토마스와 함께 아침공기를 즐기며 밤새 자신의 구역이 무사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때문에 히카르도의 산책 경로는 매일 다른데다가 토마스도 알지 못하는 샛길까지 종종 헤메게 되었지만 토마스는 히카르도가 워낙 당당하게 걷는 모습에 길을 잃는다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대로 집을 찾아갈 수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히카르도는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동물병원으로 돌아갔다. 토마스는 가끔 히카르도에게 정말 시계를 볼 줄 아는거냐며 대답 없을 농담을 던지곤 했다. 히카르도는 탐색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토마스가 지친 기색을 보이는 즉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인간의 체력은 정말 허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사사건건 맞춰줘야 하는 것이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토마스는 히카르도의 네 발을 깨끗하게 씻기고 말린 뒤 병원의 뽀얀 타일 바닥 위에 내려주었다. 이제 토마스는 대형견의 임시주인이 아닌 동물병의 수의테크니션으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간이었다. 히카르도는 토마스가 진료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대기실로 천천히 들어갔다. 쨍하니 날카로운 소리로 짖어대며 주인들을 곤란하게 하고 있던 소형견 두 마리가 히카르도를 발견하더니 냉큼 입을 다물었다. 얌전히 있어라. 듀라한까지 때려잡은 웨어울프의 권고에 반항을 할 수 있는 소형견이 어디 있을까. 다만 히카르도는 어설프게 교제를 시작한 개들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관대함을 보였다. 또다시 동물병원의 모든 짐승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가는 하루가 끝나도록 토마스 한번 보지 못하고 전용 집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히카르도는 또다시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는 대신 팔자에도 없던 중재자 역할을 떠안았다. 덕분에 이 동물병원은 다른 동물병원들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진 동물들끼리 다퉈 상처를 늘리는 사태는 사라졌다. 그것을 두고 단골 손님들이나 직원들은 히카르도가 간호견으로 훈련받았던게 아닐까 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저 너머에 있었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토마스를 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때우던 히카르도는 병원 로비가 한가해질 무렵 계단을 밟고 병원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주인의 사정상 오래 머물고 있는 동물들이나 입원해 있는 동물들이 있었다. 히카르도는 호텔링중인 동물들이 있는 곳을 대충 훑어보고 입원실로 향했다.
하나같이 허약해서는.
히카르도는 늑대의 형태로는 혀를 찰 수 없다는 사실에 애석함을 느꼈다. 굵은 주삿바늘을 다리에 꽂고 비실거리는 동물들의 모습은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어둠, 혹은 야생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늑대는 위엄 넘치는 걸음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유리문으로 다가갔다. 후반신에 빽빽하게 붕대를 감은 포메라니안은 히카르도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꼬리를 착 깔았다. 늑대의 입에서 인간은 듣지못할 낮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댐처럼 넘실거리는 웨어울프의 생명력 한 방울이 연약한 애완견의 몸에 스며들었다. 지성을 자각하기는커녕 기운을 차리는 것이 고작일 작은 양이었다. 히카르도는 입원실을 돌며 종에 관계없이 한 마리도 빼놓지 않고 회복을 부추겼다. 저것들을 내보내면 어차피 또 허약한 것들이 들어오겠지만 깔딱깔딱 숨이 넘어가는 것을 붙잡고 토마스가 눈물을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저런 하잘것없는 것들에 토마스가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히카르도는 입원해있는 동물들에게 당장 죽던가 이 병원에서 뛰쳐나가지 않으면 내 손으로 죽여주겠다며 협박을 한 적이 있었다. 경고의 내용까지 가기도 전에 히카르도의 살기에 짓눌린 짐승들은 일제히 저승길 초입까지 내몰렸다. 산기슭에 돋아난 잡풀도 그보다는 튼튼할 것이라는 것이 히카르도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어쨌든 히카르도의 돌발행동에 대한 여파로 토마스를 비롯한 모든 동물병원 직원들이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행히 무지개다리를 건넌 동물은 없었고 히카르도 역시 강경책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배워야했다.
부하들이 지성도 없는 짐승들을 돌보고 있는 히카르도를 보면 배를 잡고 웃을지도 모른다는 불쾌한 추측이 들었다. 물론 히카르도는 감히 자신을 비웃으려 드는 부하들의 복부에 바람구멍을 뚫어줘 며칠동안 고생을 시킬 수 있는 실력과 단호함을 갖춘 우두머리였기에 실제로 히카르도의 앞에서 웃음을 터뜨릴 만큼 간이 부어있을 놈은 얼마 없을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양빠지는 꼴을 부하들, 혹은 다른 괴물들이 목격하는 것은 경우가 달랐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야 할 텐데. 히카르도는 말끔하게 회복한 컨디션을 점검하며 다시금 영양가 없는 고민을 시작했다. 돌아가야 할 이유는 수 백 가지인데 머물러야 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히카르도는 최대한 시간을 끌고 싶었다.
“오래 기다렸지! 얼른 산책하고 오자.”
토마스가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쓸어넘기며 히카르도의 산책용 옷을 들고 다가왔다. 히카르도는 잠시 고민을 잊었다.
*
버스를 타고 돌아가던 토마스는 특정 정거장만 가까워지면 꼭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있던 히카르도를 발견했던 장소였다. 꼭 로드킬을 당한 것 같았다. 토마스는 몇십키로에 육박하는 대형견을 안고 숨이 턱까지 차도록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고 멀쩡한 뼈가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개는 살아있었다. 토마스는 수술 때문에 볼품없는 몰골이 된 히카르도가 집중치료실 안에 머무는 내내 온 힘을 다해 간호했다. 마침내 히카르도가 붕대를 푸는 날 얼마나 벅찼던지 히카르도를 끌어안고 소복하게 돋아나기 시작한 허스키의 목덜미 털이 다 젖어 뭉치도록 펑펑 울기까지 했다.
히카르도는 정말 신기한 개였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세 마리의 개를 키우고 적지 않은 개와 접촉해보았던 토마스는 히카르도가 다른 개들과는 다르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정말 몇천마리중에 하나 있는 천재견일지도 몰라. 토마스는 히카르도가 보여준 영리함의 편린을 반추하며 미소지었다. 사실 히카르도와 함께 있을때는 종종 신기한 일이 생겼다. 처음 히카르도가 의식을 차렸을 때 이 개를 무어라 부르느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토마스는 오랫동안 히카르도의 눈을 바라보며 이름을 고민했다. 주인이 있는 개라는 판단 때문에 따로 이름짓기가 마음에 걸렸던 것도 있었다. 바로 그때, 머릿속에서 히카르도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토마스가 망설이며 그 이름을 말했을 때, 히카르도는 대답이라도 하듯 반듯한 삼각형의 귀를 쫑긋 움직였었다. 직장동료들은 하나같이 토마스가 잘 ‘찍은’것이라고 했지만 토마스는 그 전까지 히카르도라는 이름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토마스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신비체험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토마스는 어느새 휴대폰 갤러리를 메운 히카르도의 사진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었다. 이제 마음 편하게 히카르도를 보내줄 자신이 없었다. 토마스는 아무도 모르게 이기적인 소원을 하나 빌었다. 히카르도와 마지막 산책을 함께 하는 사람이 제가 되게 해 주세요. 토마스는 차마 히카르도의 원래 주인이 영영 나타나지 않기를 빌 수는 없었다.
남몰래 빌었던 소원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실현되리라는 것을, 지금의 토마스가 알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