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법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마피아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행동을 한 뒤에는 적당히 몸을 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카모라는 얼마 전 새롭게 세력을 확장하던 신생 조직 하나를 통째로 삼켰다. 경찰들은 아직 직접적인 원인제공자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갓파더는 히카르도를 붙잡고 신신당부를 하며 억지로 몇 개월의 휴가를 안겼다.
신생조직이 하룻밤 사이에 끝장난 계기는 다음과 같다. 한참 기세등등해진 신생 조직의 카포라지메가 히카르도에게 시비를 걸었고, 히카르도는 그대로 카모라에서 신생조직의 사무실 위치를 비롯한 모든 정보를 긁어모으더니 부하 몇을 데리고 그대로 수뇌부들의 목을 남김없이 땄다. 게다가 사무실 하나를 터는 족족 비밀서류부터 컴퓨터 하드디스크, 심지어 휴대폰들까지 긁어모아 부하 하나를 골라 카모라로 배송시켰다. 그리고 히카르도는 혼자서 신생조직의 우두머리의 거처에 쳐들어가 깔끔하게 사태를 마무리짓고 대량의 정보와 함께 귀환했다. 한나절만에 사태가 끝나버린 판에 신생조직의 말단들마저 아직 제대로 사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히카르도에게는 갑작스럽게 휴가가 생겼다. 히카르도는 텅 빈 집에서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뭘 해야 하나. 피에르는 20대 남자가 할 만한 취미에 몰두해보는것도 좋지 않냐며 조언했다. 20대 남자의 취미라. 히카르도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사람만큼 수많은 취미가 화면을 스쳤다. 어쨌든 조용히 있어야 하는 처지이다보니 야외활동을 필요로 하는 취미는 힘들다. 여기서 대부분의 운동 취미가 탈락했다. 그러던 도중 상상하지 못한 글자가 히카르도의 눈에 띄었다.
게임. 게임이라……. 해 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게임을 해보려면 기계가 필요하려나. 히카르도는 연관검색어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을 터치했다. 검색결과로 게임기같이 생긴 것들이 주루룩 떠올랐다.
어떤걸 사볼까. 기왕이면 오늘 당장 할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히카르도는 몇 번 더 검색을 반복하다가 우연히 중고게임기를 판매한다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중고 거래도 하는군. 히카르도는 게시글을 훑었다. 직거래가 가능하다는 지역의 이름에 히카르도가 사는 동네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가격대는 신경쓸 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파는 사람만 가능하면 오늘 당장 써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히카르도는 게시글에 남겨진 연락처로 문자를 남겼다.
[게임기 팔렸습니까.]
히카르도는 휴대폰의 화면을 툭툭 건드리다가 소파로 던졌다. 아니, 던지려고 했다.
[아뇨아직안팔렸어요]
답장이 생각보다 빠르다. 어린앤가? 히카르도는 마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동네 사는데 직거래 가능합니까.]
이번 답장은 약간 느렸다. 방금 전 것은 손님을 놓칠까봐 다급했던 것 같았다.
[저도 그 동네 살아요! 오늘 12시에 수업 끝나는데 언제 거래 가능하세요?]
12시에 수업이 끝난다니, 고등학생은 아닌것같은데……. 히카르도는 언제든 시간 됩니다, 한 문장을 보내고 생각했다. 대학생이라면 나이차이가 많이 나더라도 히카르도보다 세 살정도 어린 것이 한계다. 히카르도는 판매자와 약속시간을 잡으며 마음껏 잡생각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세 시간 뒤, 히카르도는 근처 대학교 과잠바를 입고 안경을 쓴 거래자의 모습에 당황했다.
“이거 처음 써보세요? 그럼 제가 설치해드릴까요?”
거래품목이던 게임기 외에도 덤으로 가져왔다는 게임씨디-팩?- 몇장과 기타 기기들까지 쇼핑백 하나를 더 들고 온 거래자는 히카르도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교력의 소유자였다. 설마 침입자인가. 얼음같은 추측이 뇌리를 스쳤다. 함정이라 할지라도 머리하나는 작은 이 꼬마는 한 손으로 제압할 수도 있을 터다. 히카르도는 해볼테면 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판매자를 집에 들였다.
“잠깐만 잘 설치됐는지 확인할게요.”
토마스 스티븐슨. 그렇게 자기소개를 끝낸 청년은 컨트롤러를 두 개 모두 연결하더니 게임 하나를 실행시키고 1p용 컨트롤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한번 해보실래요? 이거 명작게임이예요!”
어느새 히카르도는 토마스의 곁에 나란히 앉아 컨트롤러를 만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3시간이 지나 있었다. 히카르도는 바로 곁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고 난 이후에야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녁은 히카르도가 대접했다. 이것저것 많이 받았으니 간단하게나마 보답을 해야한다는 계산에서였다. 토마스는 히카르도에게 게임 프로그램을 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스톰이라는 사이트까지 알려주고 가입된 아이디에 자기 아이디를 친구추가해주는것까지 끝낸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히카르도는 토마스를 집앞까지 배웅해 주고 돌아가는 토마스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어느새 경계심은 눈녹듯이 사라진 뒤였다.
신기한 성격이다. 히카르도는 바다를 처음 본 낙타의 기분을 맛보았다.
*
집으로 돌아온 토마스는 서둘러 인터넷 방송을 준비했다. 헤드셋 ok, 키보드와 마우스도 ok, 인터넷 상태도 양호. 방송이 시작되었다. 미리 알람을 설정해 둔 시청자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좀 자세하게 다시 서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히카가 첫만남부터 얼마나 콩깍지가 씌였던건지에 중점을 두고 다시 써봄(코쓱
바닥을 흐르는 빗물 위로 가로등 불빛이 멍울졌다. 폐부를 후비던 통증은 어느새 서늘한 둔통으로 바뀌었다. 이 이상 손을 쓰지 않으면 정말 위험하다. 그러나 히카르도는 일어나기는커녕 고개를 돌리는 것 조차 귀찮았다. 이 역시 위험징조였다. 지나치게 많이 피를 흘린 탓이다. 담벼락 아래를 흐르는 빗물은 언뜻 붉게 번득였다. 삶의 의욕도 피와 함께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너무나 지쳐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히카르도는 자꾸만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저항해야 할 이유 역시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빗물에 젖어 볼품없이 꼬질꼬질한 것은 벌벌 떨면서도 히카르도의 허벅지에 앞발-손?-을 올려 체중을 실었다. 그것은 빗줄기에 얻어맞을 때 마다 뾰족한 귀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히카르도는 무거운 눈꺼풀을 닫았다. 조그만 짐승은 몇 번 발을 헛디디면서도 기어코 히카르도의 품으로 들어와 옷 속에 자리잡았다. 그렇게 웅크린 짐승은 어이가 없을 만큼 작았는데도 간헐적으로 몸을 떨 때 마다 히카르도의 몸까지 함께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히카르도는 언뜻 눈을 뜨고 무거운 손을 들어 옷 너머로 그것을 감쌌다. 그러나 작은 몸뚱이의 떨림은 좀처럼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너는 살고 싶어 하는구나.
빗물에 젖어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한숨을 토했다.
담벼락에 기대앉아있던 남자가 일어났다. 꽤 큰 키 때문에 빗물 위로 넓게 그림자가 번졌다.
거처로 돌아온 히카르도는 옆구리에 짐승을 끼고 한 손으로 대충 상처 처치를 끝냈다. 세면대에 따뜻한 물을 채우면서도 그 새를 못참아 벌벌 떠는 짐승을 담그고 땟구정물 흐르는 옷을 벗겨냈다. 그러고 보니 옷뭉치에 끼어있던 낡은 플라스틱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카르도는 목걸이를 뜯다시피 벗겨내 납작한 이름표를 들여답았다. 여기저기가 찌그러진데다가 때까지 탄 이름표에는 Thomas라는 이름만 서툰 필체로 적혀있었다. 주인이 있던 놈인가. 어차피 주인이 찾는다고 돌려줄 생각도 없었다. 히카르도는 전주인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고양이들은 물을 싫어한다던데 이건 왜 이렇게 얌전하지. 히카르도는 희미한 불안감을 누르며 계속 따뜻한 물로 씻기길 반복했다. 물은 금새 더러워졌지만 히카르도는 몇 번이나 새 물을 받아가며 씻겼다. 도중에 정신이 든 토마스가 더러운 물을 먹지 못하게 하고 대신 따뜻하고 깨끗한 물을 먹이며 그제야 먹을 것에 생각이 닿았다. 히카르도는 거처에서 식사를 챙겨먹는 성미가 아니었다. 술은 몇병 쯤 있지만 수인獸人에게, 그것도 며칠을 굶은 수인에게 술을 먹일 수는 없지 않은가. 히카르도는 토마슬ㄹ 수건으로 둘둘 감싸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나마 몇 알의 호두와 뜯지도 않은 참치캔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일단 찬것보다는 따뜻한게 낫겠지. 히카르도는 참치캔 하나를 통째로 그릇에 덜어 전자렌지에 돌렸다. 그나마도 김이 올라오는걸 보고 혀가 데이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어 캔참치의 속과 겉을 뒤섞어 온도를 조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토마스가 수건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앵알거리며 보채는 바람에 히카르도는 오래간만에 초조함을 맛보기까지 했다. 히카르도가 손으로 떠주던 참치를 날름날름 받아먹던 토마스는 성에 차지 않는지 떼를 써서 기어코 접시에 코를 박았다. 접시에 묻은 기름기까지 싹싹 핥아먹고도 토마스는 좀 더 먹고 싶다는 눈치로 히카르도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방법이 없었다. 히카르도는 결국 단단한 껍질이 그대로 남아있는 호두알들을 손아귀에서 부숴 속살을 빼내 하나하나 토마스에게 먹였다. 굶은 짐승의 식욕은 대단했다. 토마스는 마지막 호두알까지 모두 먹은 뒤에야 졸린 기색으로 눈을 비볐다. 조막만한 얼굴은 호두조각과 참치기름으로 엉망진창이었다. 히카르도는 어색한 손길로 토마스의 입가를 닦아주고 이불을 바닥에 깔아 대충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침대에 올렸다가는 굴러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든 탓이었다.
히카르도는 토마스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야 수하들에게 조직 소속 의사를 데리고 거처로 오라며 연락을 넣었다. 수하들은 한참 찾고 있었다며 전화 너머로 꺼이꺼이 울다가 연락을 끊었다. 곧이어 수하 넷과 의사 하나가 왕진가방부터 잡다한 의료도구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히카르도는 의사가 대충 감아둔-그 탓에 다시 피에 젖어버린 붕대를 잘라내고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히카르도는 수인을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값이 비싸기도 하고 마피아들 사이에서는 애완용 수인보다는 보디가드로 쓸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는 수인을 선호하는 편이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이런저런 단점이 있어 특이 취향의 소유자들이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사람을 고용하는 식이었다. 히카르도 역시 토마스를 보자마자 라이벌 마피아 갓 파더가 보디가드 겸 키우는 수인을 떠올렸다. 큰 키와 단단한 체구, 그리고 야성과 이성이 뒤섞인 눈빛. 그 수인은 입마개를 차고 있는 이유를 모를 만큼 차분했다. 카포라지메로서 그런 보기 좋은 수인 하나를 끌고 다니는 것도 괜찮을테지만 히카르도는 토마스가 그렇게 크게 자랄 수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아무리 지쳤다지만 아무렇지 않게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낯선 장소에서 자는 것은 호위와는 어울리지 않기도 했다. 뭐, 자라지 않는다면 그대로 키워도 괜찮지. 히카르도는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수인들은 뭘 먹지?”
“네?”
환부를 꿰매던 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수하들 역시 자기들끼리 눈을 마주치더니 지나가던 말로 들었던 지식들을 더듬더듬 쏟아냈다. 두서없는 음식 리스트들을 들으며 히카르도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내일 마트나 동물병원에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 까뮤는 뱀 수인인데 좀...큰걸로.....? 내가 뱀 종류를 몰라서 자세히 묘사는 무리 *ㅇㅅㅇ)>
토마스는 개-사모예드입니다! 사모예드 토마스 너무좋아!
까미유 데샹은 겨울을 싫어한다. 파충류 계열이라면 누구나 까미유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추위가 고통스러운 혼현들을 위해 많은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여름의 햇살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미유 데샹은 눈을 맞으며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코트 주머니에 충전용 핫팩을 넣고 있다지만 겨울바람은 그것 자체로 쉽게 체온을 빼앗아간다지만 까미유는 한점 초조함도 없이 사람을 기다렸다. 그는 지금 오고 있을 상대를 믿고 있었다. 정확히는 약속시간에 늦으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구는 상대의 성실성을 믿었다. 아니나다를까 약속시간이 5분 가량 남은 지금, 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까미유씨, 괜찮아요?”
토마스는 흘러내린 가방끈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장갑을 벗고 까미유의 얼굴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오늘은 베이커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온 탓인지 토마스의 소매와 손바닥에서 버터와 설탕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까미유가 사랑하는 손이었다. 까미유는 익숙하게 고개를 숙여주었다. 곧 따끈따끈한 체온이 두 뺨 가득 번졌다. 개의 체온은 인간보다 1~2도 가량 높다. 그 탓인지 토마스는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더 체온이 높은 편이었다. 까미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대였다. 그러나 고작 그것 뿐이라면 까미유가 감히 토마스에게 얼굴을 만지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까미유는 천천히 코트의 단추를 풀고 자락을 벌려 토마스를 감쌌다. 토마스가 차가운 외투 째로 까미유의 품에 안겼다. 토마스는 이것이 까미유가 온기를 바래서 하는 행동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보온을 위해서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행위이지만 까미유는 모른 척 토마스를 끌어안는 것을 좋아했다.
품에서부터 온기가 듬뿍 밴 향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같은 비누, 같은 섬유유연제, 같은 샴푸를 쓰는데도 토마스에게서 느껴지는 향기는 언제나 조금 더 독특하다. 까미유는 토마스의 정수리에 코를 묻고 함뿍 숨을 들이쉬었다. 아기를 좋아하던 어떤 베이비시터는 아기들의 정수리에서는 달콤한 캐러맬 향기가 난다고 묘사하곤 했다. 그녀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둘이 동거하는 설정으로 집에 있을때는 까미유가 매번 토마스 목에 목도리처럼 감겨있는게 좋다. 토마스는 까미유가 추운가 싶어서 가운같은거 덧입고 그걸로 까뮤 덮어주고있고........헤헿 좋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