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토마] 봄이 남아있던 자리 1
+ 오메가버스 소재
+ 앵슷입니다.
+ 중세? 제국 소재
+으어어어 맘이 너무 급해서 제일 중요한 부분을 못쓰겠엌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역사에 있어 영토확장은 체제의 정비보다 앞선다. 그러나 제국은 달랐다. 선황제는 제국 내의 모든 체제를 정비하면서도 군사제도만큼은 군세를 늘리기 쉽게 여지만 만드는 선에서 정비를 끝냈ㄷ. 주변 왕국들은 선황제의 심중을 점쳤으나 황제가 귀족들을 누르고 황권을 강화하고 싶었다 추론하기에는 이미 황제의 권력은 어느 귀족도 거스르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다져져 있었으며 무슨 목적인지 모를 제도마저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로서는 그저 선황제가 태평성대를 이루고 싶었던 것이겠거니, 하고 찜찜해하면서도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새로 즉위한 젊은 황제는 불세출의 패왕이며 무자비한 정복군주였다.
젊은 황제가 즉위한지 3년도 되지 않아 네 개의 나라와 한 개의 도시국가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선황제는 영토욕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황태자의 군사적 재능과 야욕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 잘 닦여진 제도는 명마보다 충실하게 젊은 황제를 보필했다. 삼켜진 나라의 백성들은 제도에 힘입어 큰 트러블 없이 제국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농작물이 무르익는 가을, 또 하나의 나라가 제국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황제는 무엇을 노리는지 왕궁을 포위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최측근 몇과 함께 여유롭게 입성했다. 얼마 남지 않은 소국의 왕족들은 늙은 왕의 추상같은 호령에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그 하나만 남기고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늙은 왕은 죽음을 각오하고 젊은 황제를 맞이했다. 그러나 노회한 왕의 추측과 달리 황제는 모든 왕족이 도망친 것을 몸소 확인하더니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잘 도망쳤군.”
불가해不可解의 영역은 언제나 공포를 자극한다. 늙은 왕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그의 집을 친족의 피로 더럽힐 생각은 없다. 그러니 겁먹지 않아도 좋아.”
늙은 왕은 목숨을 보장받았음에도 기뻐할 수 없었다. 왕이 성에 남은 것은 왕족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 조금이라도 더 많은 핏줄을 살리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젊은 황제는 왕족들이 그물을 빠져나간 것을 흡족해하고 있었다.
마치 기대했던 대로 되었다는 것처럼. 그제야 이것마저도 함정이었는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어디서부터가 함정이었던 것인가. 늙은 왕은 아득하게 발밑이 꺼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왕의 추측은 거의 들어맞았다. 수도 외곽은 성 둘레와 다르게 제국군이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다만 황제는 그들에게 기이한 명령을 내렸다. 도망치는 왕족을 발견할 시 생포하지 말고 가는 방향만 눈여겨본 뒤 추적조에게 알릴 것. 추적조는 왕족들의 총 머릿수보다 두서넛 정도 더 많이 조직되어 있었고 팀마다 알파 혹은 오메가가 꼭 하나 이상 포함되어 있었다. 추적조는 도망치는 왕족들의 흔적을 단서로 지금 자신이 쫓고 있는 상대에 대한 인상착의를 황제에게 알렸다. 막중한 임무를 띤 전령들은 말에서 굴러떨어지다시피 내려오며 황제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 황제는 늙은 왕의 눈 앞에서 보고서 묶음을 빠르게 훑었다. 한 장을 제외한 나머지 보고서는 모두 벽난로에 던져졌다.
“피에르의 조를 제외한 나머지 추적조들에게 귀환 명령을 내린다. 피에르에게는 내가 직접 갈 것이니 말을 준비하도록.”
젊은 황제는 즐거워보였다. 늙은 왕은 푸른 피들 중 젊은이들이 어느 때 저런 식으로 웃는지 알고 있었다. 황제의 허락 없이 벌떡 일어난 늙은 왕을, 제국기사들은 가차없이 무릎꿇렸다.
“두어라. 그러다가 죽으면 골치아파져.”
황제는 늙은 왕을 돌아보지도 않고 손짓만으로 기사들을 물렀다. 그러나 이제 늙은 왕에게는 홀로 일어날 기력마저 없었다.
황제가 하고 있는 것은 사냥이었다. 황제에게 올라온 보고서는 총 다섯 개. 왕궁을 빠져나간 왕족들의 수와 일치한다. 어느 아이가 모진 황제를 만나 험한 꼴을 당할지, 늙은 왕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황제를 등에 태운 말은 몇시간 전까지 쉴새 없이 질주했다는 사실도 잊었는지 신이 나서 황제가 부추기는 대로 속도를 올렸다. 덕분에 황제를 따르는 호위기사들만 죽어나고 있었다.
*
토마스는 제법 멀리 도망쳤다. 발현이 늦은 몸은 오메가라기보다는 베타에 가까워 크게 감정이 동요하더라도 호르몬이 요동칠 일도 없고 페로몬을 줄줄 흘려 흔적을 남길 가능성도 없었다. 그렇지만 제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리였다. 토마스를 보호하던 기사와 몇 명의 병사들은 빠짐없이 제압당해 거친 흙바닥에 이마가 처박혔다. 토마스를 뒤쫓은 제국군들은 그저 그의 뒤에 부채꼴로 서는 것 만으로도 퇴로를 막았다. 그리고 그가 다가왔다. 달을 등지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일반 말보다 덩치가 좋은 준마부터 차림새까지, 남자는 온몸으로 자신이 제국의 황제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정복군주, 히카르도 바레타.
주저앉아있는 토마스에게 말 위에 타고 있는 히카르도는 지나치게 거대해보였다. 로브로 가려진 몸뚱이가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피에르는 내심 혀를 차고 로브 위로 토마스를 부축했다. 각성이 늦은 오메가인 탓인지 토마스는 왕족이면서도 키만 그럭저럭 봐줄만 하고 체구는 다소 빈약한 감이 있었다. 다음 순간 토마스는 히카르도의 품에 안겨 말을 타고 있었다.
“너무 투정부리지 마라. 그렇게 무거운 것도 아니면서 엄살은.”
투레질하는 말을 달래는 황제는 눈에 띄게 즐거워보였다.
도망을 치는 내내 토마스는 지옥을 보았다. 그러나 황제의 품에서는 약간의 알파 페로몬과 가죽 냄새 뿐, 이곳에 올 때 까지 숱하게 맡은 피비린내와 썩은내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토마스는 그것이 무서웠다.
“밤이 늦었으니 피에르, 네가 가서 퇴각시켜라. 나는 먼저 돌아가겠다.”
히카르도는 피에르의 대답도 듣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어지간히 몸이 다는 모양이지. 피에르는 군주의 탈을 쓴 친우의 돌발행동 때문에 턱까지 치미는 육두문자를 한숨으로 승화하고 수색대를 추슬렀다. 일이 잘 풀렸으니 불쌍한 군대에게 휴식을 허락할 시간이었다.
“얌전히만 군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거다.”
히카르도는 나름 관대하게 속삭였으나 토마스의 떨림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추운걸까. 히카르도에게는 약간 선선하다못해 슬슬 더워질 지경이었지만 토마스에게는 추운 날씨인지도 모른다. 히카르도는 어깨에 두른 망토를 힘주어 잡아당겨 어깨 견장에서 뜯어냈다. 고정쇠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단번에 부서졌다. 히카르도는 토마스의 머리에 망토를 뒤집어씌우고 다시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불을 쬐는것보다는 못하겠지만, 조금만 참아라.”
토마스는 내내 조용했다.
*
황제는 토마스를 천막으로 지어진 임시거처로 데려왔다. 그러나 천막은 투박한 군용이 아닌, 어마어마한 크기와 숫자로 연결되는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시중을 들 하녀는 물론 시녀들까지 있었다. 토마스는 기가 막혔다. 이번 전쟁은 제국에게 있어 전쟁이 아닌 유람이었다. 토마스의 나라는 어린아이의 손에 잡힌 과자보다 쉽게 바스러졌다. 그러나 토마스에게는 허탈해 할 시간도 없었다. 토마스는 변장을 위해 입었던 로브와 허름한 옷들을 빼앗기고 욕실로 떠밀렸다. 뜨거운 물에 토마스를 집어넣은 하녀들은 빠르게 토마스를 씻겼다. 하녀들의 손길에서는 왕족을 대하는 정중함보다 귀한 접시라도 대하는 것 같은 정확함이 느껴졌다. 목욕은 짧았다. 몇 명이나 되는 하녀들이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도록 토마스를 제압했다. 하녀 하나가 유리병에서 부드러운 색의 액체를 손바닥 위에 덜더니 토마스의 치부에 손을 넣었다.
비명을 참은 것은 토마스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
히카르도는 새하얀 담비털 망토에 폭 싸인 토마스를 무릎에 앉히자마자 어린애라도 구슬르는 것처럼 달래며 단검으로 머리카락 한 줌 가량을 잘라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에게 넘겼다.
“이제 겨우 둘만 남았군.”
히카르도는 한숨처럼 속삭이며 토마스의 하얗게 질린 얼굴 이곳저곳에 입맞췄다. 5년간의 인내심은 여기까지였다. 히카르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토마스를 침대에 눕혔다.
그대는 내가 5년간 인내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지. 그러니 조금만 참아다오. 금방 끝내주마. 난폭하지는 않을거야. 약속하겠다.
히카르도는 한없이 달짝지근한 속삭임들을 쏟아내며 망토를 벗겼다. 따스한 목욕물의 영향으로 엷게 분홍빛이 감도는 피부보다 채 피어나지 않은 풋풋한 페로몬이 더욱 히카르도를 자국했다. 히카르도는 토마스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전율했다. 이윽고 뜨거운 입술이 쇄골에 닿았다.
“싫어!!”
토마스의 저항은 발작에 가까웠다. 히카르도의 볼에 붉은 선이 그어진 것은 그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히카르도는 토마스가 스스로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자각하기도 전에 양 손목을 움켜쥐고 침상에 찍어눌렀다. 은은한 어둠속에서 보랏빛 눈동자가 이질적으로 번득였다. 그제야 황제의 뺨에 생긴 생채기에 핏방울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파란 눈동자에 공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기억하지 못하는군. 그렇지?”
황제는 입꼬리만 당겨 웃었다. 뒤틀린 미소였다. 토마스는 히카르도가 무슨 기억을 말하는 것인지 짐작 가는 것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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