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가 일어나는 기척에 맞춰 히카르도 역시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히카르도는 부러 눈을 뜨지 않고 자는 시늉을 했다. 요즘들어 아르바이트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기 시작한 토마스는 히카르도의 잠을 깨울까봐 그토록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히카르도는 최소한 토마스 때문에 잠에서 깬거라는 것은 들켜서는 안된다. 히카르도는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눈을 떴다. 커튼 너머로 얼비치는 하늘이 아직도 새파랗다. 걱정에 젖어 한숨을 내쉬던 히카르도는 토마스의 베개에 남은 흔적을 발견했다. 단단한 손이 토마스의 베개를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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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지 않다. 토마스는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코부터 뺨까지 검붉은 자국이 번져있는걸 보니 자다가 코피라도 흘린 모양이었다. 하긴, 요즘 많이 무리하긴 했지. 토마스는 찬물을 받아 얼굴을 적시곤 핏자국을 문질러 닦아내기 시작했다. 잠도 깰 겸 일부러 찬물로 세수를 해보는데도 피곤함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토마스는 얼굴의 물기도 다 닦지 못하고 몇 번 마른기침을 했다. 숨쉬는 것이 약간 거슬렸다. 설마 감기까지 걸린건 아니겠지? 목에 뭐가 걸리는가 싶더니 재채기가 한 번 크게 터졌다. 에취! 손바닥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토마스는 손아귀를 타고 배어나오는 핏물과 입가를 적신 불그죽죽한 흔적을 잊고 활짝 웃었다. 굳이 변명을 해주자면 누적된 피로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히카르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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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라니. 코피가 나도 모르고 자다니! 히카르도는 토마스를 고용한 가게들을 하나하나 뒤집어엎고 싶었다. 만약 그대로 히카르도가 화를 냈다면 대여섯개는 되는 가게들이 싸그리 영업을 그만뒀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히카르도는 토마스의 앞에서 차마 폭력성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두 손을 꼭 잡고 달래주는 토마스 때문에라도 히카르도는 겉으로나마 마음을 가라앉히는 흉내를 내야 했다.
피를 토한 것을 보고 폐병이라도 걸렸을까봐 얼마나 놀랐던가. 애인이 피를 토하는 장면은 피로 손을 씻던 전직 마피아에게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히카르도는 토마스를 붙잡고 한두개라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어달라고 간곡하게 설득했다. 토마스는 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이유는 히카르도의 눈동자에 가득했다. 건강 때문에 저렇게 애를 태우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토마스는 히카르도를 품에 안고 단단한 등을 다독였다.